하루키의 카메라

권유안 배우를 늦여름 강남역에서 만났다. 유안 배우는 모델로도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. 어쩌면 레디, 액션! 소리보다 조명 스트로보가 터질 때 들리는 비프음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. 배우와 모델의 경계에 대해서 항상 궁금하였다.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던 배우들도 유명 잡지의 화보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. 움직이는 연기와 한 컷의 정지된 모습. 예전에 유안 배우에게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말하였을 때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였다.

“가장 큰 차이점은 시간의 지속성인 것 같아요. 모델은 사진 한 컷으로 모든 걸 표현해야 하고, 배우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어야 하고요.”

모델로 시작한 배우들이 많이 있었다. 배우로 자리 잡은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견딘 자들 일 것이다.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다.

강남역 안쪽엔 생긴지 20년도 더 된 동전 야구장이 있다. 강남 한복판에 있는 야구장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.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다.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 야구장에서 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. 유안 배우와 나 둘 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.

“네? 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요.”

유안 배우는 잠시 당황하고 이내 호쾌하게 웃었다. 야무지게 장갑을 끼고 타석에 올라섰다. 생각보다 빠른 공에 흠칫 놀랐지만 다시 집중하였다. 몇 번의 헛스윙.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호기롭게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이 하루키 소설의 한 장면 같다.

깡. 깡. 알루미늄 배트에 공이 맞는다.

픽. 픽. 하루키의 소설에서 스트로보 비프음이 들리는 듯하다.

사진과 글: 박정훈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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